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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소득보전세제(EITC)가 성공하려면 | 박상근 경영학박사 | 06.02.23 | |
최근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는 양극화 해소방안의 하나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근로소득보전세제의 효시는 미국이다. 미국은 1975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 저소득층에 대한 일자리창출과 소득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근로소득보전세제가 성공한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노동시장 환경개선, 소득파악률 제고 등 제도 도입에 앞서 기본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선결과제다.
첫째,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다. 근로소득보전세제에 의거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일을 해야 하며,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근로소득을 벌어야 하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지원되는 금액은 근로자가 직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보전율(補塡率)을 곱해 산출된다. 그러므로 직장이 없는 근로자는 근로소득보전세제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와 같이 일자리가 없어 구직난에 빠진 한국의 노동시장에 근로소득보전세제를 도입한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먼저 기업으로 하여금 일자리 창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특히 여성 노동공급의 증가가 예상되므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근로자의 원활한 노동시장 이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증대돼야 한다. 둘째, 충분한 재원 마련이다. 이를 위해 고소득 자영업자를 비롯한 고소득 계층의 강도 높은 과표 양성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의 50% 정도가 세금 한 푼 안내는 과세미달자이고,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가 심각한 상태다. 정부도 자영업자의 과표 양성화에 나서고 있으나, 세무조사 강화로는 한계가 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영업자가 매출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 폐지, 금융거래자료 활용 확대, 신용카드 사용 확대, 재산취득금액과 소비금액을 기준으로 소득금액을 추계하는 방안 등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03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참여 인력의 19% 정도인 연간 약 2,800만 명이 38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38조 원)의 EITC를 수령하였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30여만 명을 대상으로 할 경우 소득보전율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연간 적게는 2조 원, 많게는 4조 원 가량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원확보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제도 도입 초기에는 여성 가구주 등 최소한의 인원을 대상으로 시행해 보고, 제도의 실효성과 재원확보 수준을 봐 가면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대상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 파악이다. 미국은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가 83%에 이를 정도로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정상화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금을 내는 근로자가 53%에 불과하다. 또 우리나라는 사업자의 50%가 소득세과세미달자이고 소득세를 내는 사업자의 50%가 장부를 기장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소득세과세미달자와 장부를 기장하지 않는 사업자가 총 사업자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조세환경에서 사업자에 소속된 근로자의 임금이 제대로 파악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영세 사업자가 임금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 부과 등 영세사업자에 소속된 근로자의 임금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영세 사업자가 임금을 노출시킬 경우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으면서 4대 공적보험과 세금으로 15%(사업자: 8%, 근로자: 7%)의 부담이 새로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가산세 2%를 물리는 법 개정으로 사업자가 임금을 자진 신고할 지 의문이다. 영세사업자가 임금신고를 제대로 이행하도록 하려면, 사업자가 과표를 노출하도록 유도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면 사업자는 소득금액 계산에 임금을 비용으로 계산해야하기 때문에 근로자 임금은 자연적으로 노출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근로소득보전세제 도입의 전제조건인 일자리 창출과 재원확보 그리고 대상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와 같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선진국의 성공 사례만 바라보고 섣불리 제도를 도입할 경우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불법청구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근로소득보전세제가 제도 도입의 전제조건 미비로 근로자에 대한 고용확대와 소득증대, 그리고 공평과세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재원낭비만 초래해선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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