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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충실한 세제와 세정을 바란다 박상근 경영학박사 06.01.02
병술(丙戌)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여 납세자 입장에서 지난해를 뒤 돌아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세금으로 인한 고통이 많았던 한 해였다. 정치권에서는 세금폭탄, 세금과의 전쟁이라는 말로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곡식 화(禾)’와 ‘기쁠 열(悅)’로 구성돼 있는 게 ‘세금 세(稅)’자 아닌가. 세금에는 ‘납세자가 기쁘게 내는 것’이란 깊은 뜻이 담겨있다. 올 한해 모든 국민들은 세금에 담긴 뜻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낼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우리경제가 지난해보다 나아지고 일자리가 늘어 청년실업이 줄어들 것이란 희망찬 예측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나라살림은 복지지출과 대형 국책사업 등으로 지출은 늘어나는데 세수(稅收)가 이를 뒷받침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매우기 위해 근로자를 비롯한 중산서민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땜질식 세법개정과 무리한 세정으로 대응할 경우 국민의 희망과는 달리 올해도 납세자의 세금고통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올 한해 참여정부의 세제와 세정은 소득에 대한 과세강화로 그동안 훼손된 세 부담의 공평을 회복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 소득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이 원칙이고 공평한 세제다. 소득이 주 세원(稅源)이고 재산과 소비는 보조 세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보조 세원인 재산과 소비에 과세되는 세금 비중이 OECD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다. 세(稅) 부담의 공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자본재산 소유자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둬 가난한 자를 돕는 부유세 성격의 세금은 ‘로빈후드 효과’로 가난한 사람만 더 못 살게 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세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의 전설적 인물인 ‘로빈후드’는 부자로부터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좋은 일을 했다. 이 결과 부자들은 모두 이 마을을 떠나고 가난한 자들만 남게 돼 과거보다 더 못 살게 됐다는 것이 ‘로빈후드 효과’다. 더구나 현대는 자본이동이 글로벌화 돼 있는 시대다. 정부가 세금으로 부자와 대기업을 불안하게 하면 국내외 자금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고자 할 때 세금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소득과세 강화는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시발점이다. 국세청이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이 보다 자영업자의 금융거래를 투명화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재산증가액과 소비금액을 기준으로 실제 벌어들인 소득을 역산(逆算)하는 제도 등 소득파악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 선결과제다.

참여정부는 저 출산 고령화 대책 등 세출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세목신설과 세율인상을 들고 나왔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세계적 추세인데 거꾸로 가려는 것이다. 탈루세원 발굴, 비과세․감면 축소,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 폐지 등 과세기반(tax base)을 넓히는 것이 먼저고 세율인상은 최후의 수단이다.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물가상승과 저소득층의 세(稅)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외자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정부는 세금징수만을 생각해 경제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세율을 인상하는 우(憂)를 범해선 안 된다.

정부의 근본적인 세수확보대책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돼야한다. 올해 정부의 재정운영계획을 감안하면 경제가 5% 이상 성장해야 원활하게 세금이 걷히고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실업 해소에 숨통이 트이게 돼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투자와 소비가 고장 난 상태에서 5%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기(氣)를 살리고 부자를 인정해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세제와 세정을 운영하기 바란다. 기업의 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소비로 나타나 투자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세수를 원활하게 확보하는 길이다.

우리경제는 수출위주로 국내총생산(GDP)은 매년 3~4% 정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과실이 배당금․부품소재대금 등으로 해외로 빠져 나가는 금액이 많기 때문에 수출이 국내 투자와 고용에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경제주체에 떨어지는 국민총소득(GNI)은 제로(0)에 가깝다. 수출기업이 주로 일본 등 외국으로부터 부품소재를 조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용 없는 성장과 경기회복을 더디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乖離)를 심화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세제 등 불균형 성장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세금이 민간경제에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중립성의 원칙도 중요한 조세원칙이다. 정부가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해 세금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활용하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 종부세 과세금액의 세대별 합산, 종부세의 급격한 인상, 66%에 달하는 양도소득세율 등은 사유재산권의 과도한 침해로 위헌적 요소가 있고, 세금이 부동산시장을 필요이상으로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세금으로 부동산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가 건설경기 위축, 주택가격 상승과 임대료 인상 등으로 이어져 경제에 주름살을 깊게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예산절감에 솔선수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은 얼마의 세금을 내야하는가도 관심이지만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가도 큰 관심 사항이다. 정부가 예산을 낭비하면서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라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정부 스스로 공무원과 위원회 수를 줄이고, 700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재검토해 불요불급한 사업을 연기 또는 취소하는 등 작은 정부를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정학의 주류인 애덤 스미스(A. Smith)와 바그너(A.H.G. Wagner)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제와 세정의 기본 목적은 세수를 원활하게 확보하는 데 있다. 세금은 소득을 기준으로 공평하게 거둬야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재산권이 보호돼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에다 민간경제에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세제와 세정을 운영하는 것도 기본이다. 정부가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세제와 세정을 운영해 국민의 세금고통이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올 한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2006.1. 2. 조세일보, 원단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