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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정치자금, 과세대상인가 박상근경영학박사 04.07.07
지난 2002년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부 정당이 불법으로 모집한 대선자금에 세금을 물릴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치자금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모집한 정치자금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일부 정당이 기업으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은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불법정치자금이기 때문에 과세대상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법적인 판단을 요하는 세상 문제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불법정치자금에 세금을 물릴 것인가’와 같은 민감한 사회문제의 처리는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하거나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증오 감정만을 앞세워 포퓰리즘(populism)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현행 세법은 불법정치자금과 같은 불법소득에 세금을 물릴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법의 최종 해석기관인 대법원이 ‘세법상 과세소득’에 대해 어떠한 해석을 하고 있는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대법원 판례는 “과세소득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 현실적으로 이득을 지배관리하면서 이를 향수(享受)하고 있어 담세력(擔稅力)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족하고, 그 소득을 얻게 된 원인이 법률적으로 적법하고 유효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불법소득에 대한 세금과세와 그 경제력 지배에 대한 법적 타당성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불법소득이라도 세법에 과세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소득・증여 등 과세요건을 충족하면 세금부과 대상이 된다. 불법행위, 무효인 법률행위,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 등은 법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법률행위이지만, 이러한 법률행위로 인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발생했다면 세금을 부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 해석에 비춰볼 때 불법정치자금도 당연히 소득세 또는 증여세 과세대상이 된다.

또 한가지 쟁점은 ‘불법정치자금이 국고로 몰수되거나 추징된 경우에도 세금을 물려야하는가’이다. 범죄행위로 발생된 소득 또는 부당이득과 불법행위 소득은 당연 무효이므로 형벌에 의해 몰수.추징되거나 민사상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또는 손해배상청구로 경제적 이득이 상실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검찰이 기소권(起訴權)을 행사해 불법정치자금을 모두 추징했다면, 불법정치자금 모집 관련자는 추징당한 시점에서 이미 담세력을 잃었다고 봐야한다. 과세대상인 소득이 모두 국가에 귀속됐는데도 불구하고 당초의 불법정치자금에 세금을 매긴다면 ‘소득’이 없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조세부과의 기본원칙인 조세법률주의 또는 실질과세원칙에 어긋난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불이익은 세금보다는 관련법에 의해 형벌과 추징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가 일반 국민들의 불법소득과 정치인.고위관료 등 사회지도층의 불법소득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지고 불공평하게 과세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불법정치자금에 대응하는 자세를 볼 때. 시민단체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세제(稅制)와 세정(稅政) 당국은 이러한 불신과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해 불법정치자금에 관련된 기업과 정치인에 대한 세금과세와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적극 나서기 바란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불법정치자금 수사의 장기화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많은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바용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은 이러한 국민의 고통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국민의 이러한 고통에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까. 앞으로 정치권과 기업 사이에 얽힌 불법정치자금의 고리를 완전히 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번 불법정치자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이 과거 부패정치를 제대로 청산하고 기업이 정치자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일, 이것이 정치권이 불법정치자금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에 보답하는 길이다. / 2004. 5. 12. 조세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