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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충실한 투기대책을 박상근 04.07.07
정부의 부동산투기억제대책 중 세금관련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해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로 무겁게 매기는 것이다. 둘째는 투기거래에 대해 높은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하고 1주택 비과세 기준을 강화해 세금을 적극적으로 거둬들이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자 정부가 투기지역을 전국 45개(주택투기지역 41곳.토지투기지역 4곳)지역으로 대폭 확대했지만 실제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인 부동산114 조사결과, 지난 7월 한 달간 투기지역 아파트가격 상승률이 1.61%인 반면 비(非)투기지역 아파트 값은 0.42% 상승에 그쳤다. 투기지역 아파트값 상승률이 비투기지역보다 오히려 4배 정도 높아 투기지역 지정이 투기를 억제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강남권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자 영등포.용산 등 비강남권으로 투기가 확산됐다. 서울의 경우, 투기지역이 지난 4월 강남구 1개구에서 현재 서초.영등포.용산 등 13개구로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투기지역지정이 투기억제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지역으로 투기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낳은 셈이다.

투기를 잡기 위해 양도소득세율을 인상하는 것도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라고 본다. 정부는 내년부터 보유기간이 1년미만인 부동산을 팔 경우 양도소득 기본세율을 36%에서 50%로 높일 계획이다. 투기지역인 경우 최고 15%의 탄력세율을 가산할 수 있고 소득세의 10%인 주민세까지 감안하면 실질세율이 71.5%에 이른다. 부동산을 1년미만 보유하고 양도한 것이 어디 징벌대상인가.

세율이 아무리 높아도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세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율이 너무 높으면 세금을 피하기 위한 온갖 편법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단기양도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정부의 세제운영 기본방향인 넓은 세원(稅源).낮은 세율(稅率)과도 맞지 않는다. 특정거래에 징벌에 가까운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투기대책은 투기를 잡지 못하면서 세제의 기본인 공평과세원칙까지 무너뜨림에 따라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모든 법과 제도가 그러하듯, 조세법의 제정과 운용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조세법은 재정수입 확보와 국민의 재산권보호가 기본 목적이다. 같은 소득에는 동일한 세금을 매기는 것이 원칙이다. 조세는 기본목적과 조세원칙에 충실하면서 투기 방지에 보조적 역할을 하는데 만족해야 하고,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해 세금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정론적인 대응이 아니라는 얘기다.

투기지역에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이나 비투기지역에서 발생하는 양도차익은 모두 같은 양도소득이다. 그러므로 전국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에 대해 실거래금액을 기준으로 동일한 세율에 의해 세금을 제대로 과세해야 공평하다. 이것이 조세의 기본원칙에 충실하면서 투기억제에 기여할 수 있는 세제라고 할 수 있다. 투기지역 지정과 같이 국지적이고, 단기양도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을 인상하는 것과 같은 개별적인 조세정책으로 부동산투기를 잡을 수 없다.

부동산투기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금융정책과 주택정책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 적정한 금리수준의 유지, 저금리로 인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과도한 부동자금을 분산할 수 있는 리츠(REITs)와 같은 금융상품의 개발 등 실효성 있는 금융정책이 필요하다. 또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양질의 주택공급,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과 같은 주택정책이 제대로 집행돼야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다. 9.5 재건축시장안정대책은 투기나 집값 상승에는 주택정책으로 대응해야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03. 9. 9. 헤러드경제, 오피니언 ‘헤럴드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