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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 당근이 필요하다 박상근 경영학박사 13.06.03
베일에 가려 있던 ‘조세피난처(발생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15% 이하로 낮게 부과하는 국가나 지역)’ 실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최근 비영리 인터넷언론매체 ‘뉴스타파’는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실체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가지고 있는 재벌 총수 등 실명을 공개했다.

영국의 조세피난처 반대운동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우리나라 부자들이 조세피난처로 이전한 자금은 7790억 달러(약 870조원)에 이른다. 1조1890억 달러의 중국과 7980억 달러의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조세피난처로 자금이 이전되는 징후는 국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관세청 분석에 의하면 2010년 한해에 우리나라와 조세피난처 국가 사이의 외환거래는 2552억 달러이고 실거래 무역규모는 1382억 달러였다. 차액 1170억 달러(약 135조원)는 조세피난처에 투자되거나 해외 도피 혐의가 있는 자금이다. 이를 감안할 때 그동안 우리나라 부자들이 조세피난처에 이전한 자금이 약 870조원에 달한다는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이를 통한 외화 불법 유출, 비자금 조성, 역외탈세가 문제다. 특히 ‘역외탈세’는 복지재원 마련, 지하경제 양성화, 조세정의 구현 차원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발본색원해야 마땅하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법과 불법을 잡아내려면 넘어야 할 걸림돌이 많다. 역외 거래가 대부분인데다 관련 국가의 비밀 유지 때문이다. 최근 수년 간 외환 당국이 불법 외화 유출을 적발한 실적이 극히 저조하고, 국세청의 미미한 역외탈세 적발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 무역 1조 달러시대에 먹튀 론스타, 구리왕 등과 같이 세법의 허점과 역외거래를 이용한 조세회피수법은 하늘을 날고 있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땅을 기고 있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법과 불법조사의 성패는 밀어붙이기식 강제조사가 아니라 국제 공조와 해당 기업의 협조에 달렸다. 정부는 국제 공조를 강화해 조세피난처 관련인의 명단 확보와 개래 정보 수집에 주력하는 한편,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불법자금 유출, 비자금 조성,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당사자에게 자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당사자가 성실히 자진 신고하는 경우 세금은 추징하되 외환관리법, 조세범처벌법에 의한 형사처벌과 명단공개를 면제하는 당근이 필요하다. 자진신고기간이 지난 후 국세청은 그동안 수집된 정보와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불성실신고자를 가려내 엄정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세금추징, 형사처벌, 조사내용 공개의 수순을 밟는 것이 조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자금이 우리나라를 빠져 나가고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이유는 세율이 높고 규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세율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조세피난처에 대한 근본 대책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고소득자의 불법 외화 도피와 비자금 조성, 탈세가 이뤄진 후 뒷북치기 단속이나 세무조사에 나서기보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법과 불법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조세․ 금융 시스템 구축과 국제 조세행정 공조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 2013.06.03. 서울경제,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