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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우선순위와 반값등록금 박상근 경영학박사 12.10.12
지난해 대학생들이 정부에 반값등록금 이행을 촉구하며 벌인 촛불집회 이후 반값등록금이 대선 이슈로 자리 잡았다. 반값등록금도 교육 투자의 한 분야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세우려면 정책의 실효성과 투자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부채에 짓눌리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어 생존을 위협받는 극빈층이 무려 6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촛불 들고 거리로 나올 힘도 없다. 그렇다고 국가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초생활 보장보다 반값등록금부터 챙겨선 안 된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혜자 요건이 너무 좁고 까다롭기 때문에 대부분 극빈층이 기초생활도 어려운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수혜자 요건을 대폭 완화해 130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500만명 수준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 지금은 반값등록금보다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의 민생을 챙기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최근 정부는 0~5세 영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을 철회하고, 소득하위 70%와 맞벌이 위주의 선별적 무상보육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전면 무상보육에 들어가는 8조원의 예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무상급식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반값등록금보다 앞서 도입해야 할 ‘고교의무교육’에도 연 3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여기에 반값등록금까지 도입한다면 매년 4~5조원이 더 들어간다. 현재 시행중인 보육과 교육 재원 확보도 어려워 차질을 빚고 있다. 반값등록금은 보육과 급식, 초․중․고 의무교육이 정착된 후 재정 여건을 감안해 도입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9%로서 세계 최고다. 매년 대학 졸업생 50만명 중 절반이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된다. 반면 대학 졸업생이 기피하는 산업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과도한 대학 진학이 '인력의 미스매칭(mismatching)'과 ‘청년실업률’을 끌어 올렸다. 반값등록금은 인력수급, 청년실업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학 졸업생을 줄이는 정책을 쓰는데 여야는 대학 진학을 부추겨 청년실업률을 높이는 정책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랏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대학 적립금 활용, 대학구조 조정과 자구노력, 민간 장학금 활성화에 의한 등록금 인하다. 여기에 학생 본인의 자구노력은 필수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 후보가 표를 의식해 반값등록금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백년대계인 교육을 망치는 것이다.

부자 나라 미국도 부모는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대준다.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 융자 등으로 본인이 조달해야 하고, 부모와 국가는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취업 후 학자금상환제도가 있고, 사이버대학·한국방송통신대학․직장부설 특성화대학 등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평생교육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반값등록금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저렴한 등록금으로 대학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열려있다.

반값등록금은 부실 대학을 연명하고 노동시장을 왜곡시킨다. 투입에 비해 산출이 적고 부작용이 크다. 지금 반값등록금을 도입할 재원이 있다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확대, 무상보육과 초․중교 의무교육 내실화, 마이스터고를 비롯한 특성화고 확충과 지원에 투입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교육 투자의 우선순위’에 맞고 정책의 수혜 대상을 넓히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2012.10.10. 헤럴드경제, 헤럴드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