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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막으려면 | 박상근 경영학박사 | 12.09.05 | |
사회적 비판 여론과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6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끼리 내부거래는 186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8.7%(41조6,000억원) 늘어났다. 특히 STX(27.6%)ㆍSK(22.1%)ㆍ현대차(20.7%) 그룹은 전체 매출액 중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었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수단 악용 내부거래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서는 수직계열화 또는 내부거래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내부거래로 생긴 이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재벌 총수 일가, 특히 총수 2세가 내부거래로 생긴 이익을 독점하는 게 문제다. 실제로 C 부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S사는 지난해 매출 중 74.7%가 내부거래였다. K 회장의 아들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H사는 매출의 57.8%가 계열사 간 거래였다. 이 경우 내부거래로 생긴 이익의 100%를 총수 2세가 챙기게 된다. 일감 몰아주기가 대기업 오너 2세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와 재산상속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이 오너의 자녀가 주주인 비상장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비상장회사 대주주인 오너의 자녀는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대기업 오너 자녀는 이 자금으로 모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를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이용한 편법 경영권 승계는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으로써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기회 균등과 공정경쟁이다. 내부거래는 대부분 수의계약 방법으로 거래처가 선정되기 때문에 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시스템통합(SI) 업종은 내부거래금액 중 95%, 물류업종은 99.5%가 수의계약이었다. 수의계약 남발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소기업의 사업 참여와 공정경쟁 기회를 차단한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지난해부터 거셌다. 지난해 말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에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세법을 개정했다. 최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차단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본격화됐고 여야는 앞다퉈 대기업의 경제권력 남용 방지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지난해 대기업의 계열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는 더 늘었고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선거가 끝나면 그만일 것이라는 재계의 안일한 대처도 내부거래를 늘리는 데 한몫했다. 과징금 등 한계…근본 대책 마련을 일감 몰아주기에 증여세를 매기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물리는 솜방망이 처벌로는 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처벌보다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기업 스스로 일감 몰아주기를 비롯한 경제권력 남용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적합업종과 골목상권에 진출하지 않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하는 방안 등이 그 예다. 최근 한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사법처리 파장을 감안할 때 의외로 실효성이 클 수 있다. 대기업 A사 임직원이 수의계약 등 부당한 방법으로 A사 총수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 B에 일감을 몰아줬다면 A사 주주에게 귀속될 이익의 일부를 총수 자녀에게 넘긴 것으로 볼 수 있어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 / 2012.09.05. 서울경제, 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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