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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비용 마련방법의 시사점 박상근 경영학박사 12.01.04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통일’이라는 단어가 현실 속으로 다가왔다. 우리 국민은 통일과 관련해 통일비용의 규모와 본인이 부담하게 될 금액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감을 갖고 있다. 통일비용 규모는 보는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통일비용 마련방법을 정하기가 어려우면서 통일시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먼저 통일비용 규모다. 통일비용은 연구기관과․ 전문가에 따라 적게는 500조원 많게는 천문학적인 5800조원까지 그 규모를 종잡을 수 없다. 주로 북한주민의 소득을 남한의 어느 수준까지 끌어 올릴 것인가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2005년)는 546조원, 조세연구원(2009년)은 1220조원,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 피터백(2010년)은 2300조원~5800조원,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2011년)는 735조원~2757조원을 통일비용으로 제시했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지출될 비용이지만 우리나라의 연간 세출예산이 300조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다음으로 통일비용 마련방법이다. 현재 정부는 연 1조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 중 쓰고 남은 불용액과 민간 또는 정부 출연금 등을 ‘통일항아리(통일재원 적립 특별계정)‘에 담아 20년 후 총 55조원대 통일재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적립 규모와 적립 기간을 감안할 때 통일항아리로는 통일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경험한 독일은 ’세금․ 국채발행․ 기부 등‘ 세 가지 방법으로 통일재원을 마련했다.

부가가치세는 물건가격에 붙여 거둬들이는 간접세다. 이 때문에 별 조세저항 없이 다수 국민으로부터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10%인 부가가치세율을 2% 포인트 올릴 경우 연 10조원의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단일세율로 소비에 부과되기 때문에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또한 부가가치세 인상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살림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통일세의 공평 부담 측면에서 별도 세목을 신설하거나 소득․ 법인세에 직접세 형식의 통일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이 도입한 ‘연대특별세( Solidarity Surcharge)’가 바로 이 형태다. 독일 정부는 통일 직후인 1991년과 1995년 두 차례 소득세와 법인세에 각각 7.5%(2005년은 5.5%)의 연대특별세를 부과했다. 정부가 법인세와 소득세에 7.5%의 통일세를 부과할 경우 연 5조25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 이 경우 조세 저항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따른다.

한편 국채 발행은 단기간에 대규모 자금 마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가 재정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현재 비용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문제점이 있다. 독일은 세금(27%), 국채발행(53%), 기부 등 기타(20%) 비율로 통일재원을 마련했다. 우리도 이 비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 세대 부담인 세금보다 미래세대 부담인 국채발행 비중이 2배 높다. 통일 편익이 집중될 미래세대에 통일비용 부담을 집중시킨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통일전문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정도가 통일비용을 분담할 용의가 있고 그 금액은 20만 원 이하라는 답변이 80%에 달했다. 이 조사에 따른 민간 통일 기부금은 많아야 4000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 여기에 기업 통일 기부금을 보태더라도 큰 금액이 걷힐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다. 정부와 정치권은 통일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꾸준히 연구하고 독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통일과 관련된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선결과제다. 그리고 통일비용 마련 과정에서 '국민 부담 최소화와 균형재정'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려면 통일 후 북한 개발에 민간 투자와 외자를 적극 유치해 증세와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 2011.01.04. 세계일보,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