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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폐지, 시기상조다 박상근 경영학박사 08.11.06
대한상의가 상속세 폐지를 정부에 건의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상의는 상속세가 경영권승계를 어렵게 만들고 미실현소득에 과세한다면서 폐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상속세제도 현실과 국제적인 추세를 잘 반영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재계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지만, 부(富)의 재분배라는 정책적 목적이 강한 세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는 7개국에 불과하다. 더구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부(富)의 대물림을 시정하는 상속세 기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정부가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상속세폐지론자들은 부자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내고 남은 재산인 상속재산에 또 세금을 부과하면 이중과세라는 주장을 한다. 부자들이 기부와 일자리창출로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정서도 상속세 폐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 국민들은 부자들이 부(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속세는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탈루한 세금을 마지막으로 정산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이 또한 우리나라가 상속세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상속세를 폐지한 대부분 국가가 상속받은 재산을 양도할 경우 양도가액에서 돌아가신 사람이 취득한 가액을 차감한 차익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보완책을 도입했다. 재산을 물려 줄 사람이 취득한 금액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6년 6월부터 등기부에 취득가액을 기재하는 제도가 도입됐고, 2007년부터 양도소득세를 실거래가로 부과해 오고 있다. 2006년 6월 이전 부동산취득자의 취득금액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실정이다.

재계는 상속세가 경영권확보에 걸림돌이 된다지만, 경영권(특히 대기업)은 주주의 고유 권한이므로 상속과 연관지울 문제가 아니다. 경영인이 주주이익을 극대화하고 기업을 성장시킬 능력이 있다면 소유경영인이든 전문경영인이든 주주의 선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산소유권에 대한 상속세는 법에 따라 성실히 신고·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상속세 폐지는 어렵다. 그러나 상속세가 기업의 유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자산의 해외유출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으므로 완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앞으로의 세제개편에서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 50%를 40%대로 인하하는 게 세계적 추세에 부합한다.

현재 상속재산 10억원 이하에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는다. 이 금액은 10년 전인 1998년에 정해진 것으로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제 강남에 30평형 아파트 한 채만 갖고 있는 1세대1주택자도 상속세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 달라진 경제 환경을 반영하고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과중한 상속세가 사업의욕을 떨어뜨리고 중소기업의 유지발전을 가로막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독일과 같이 중소기업을 성실히 경영하여 가업으로 물려 줄 경우 그리고 후세들이 가업을 잘 운영해 납세·기부·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경우 이를 평가하여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 인센티브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 2008.04.23. 조세일보, 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