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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성자 작성일
美 상속세 폐지 논쟁을 보면서 박상근 교수 06.05.19
[독자 칼럼] 美 상속세 폐지 논쟁을 보면서
법 준수·재산 형성 과정 투명해야
상속세 폐지·완화 논의할 수 있어



▲ 박상근 교수

미국 부시 행정부가 세 부담 경감과 경기회복을 위해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도 재벌기업 후세가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상속세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시 경제팀은 상속세가 이중과세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부모가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관련 세금을 모두 냈는데, 이 재산이 자식에게 넘어간다고 또 세금을 물리면 이중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탈세 등으로 가진 자의 재산형성 과정이 불투명하고,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된 국가에서는 평생 동안 탈세한 세금을 정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상속세를 폐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 행정부가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행보와는 달리 정작 빌 게이츠 시니어,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 미국 최고 부자들은 부시의 상속세 폐지안을 반대한다. 이들이 회원으로 있는 ‘책임감 있는 부자들(Responsible wealth)’ 모임은 상속세 폐지 반대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 부자들은 상속세를 내느니 차라리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사회복지재단 출연이나 문화예술 단체에 기부를 하는 등 윤리와 책임을 다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만약 상속세를 폐지하게 된다면 이러한 윤리와 책임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기업의 기부문화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재벌이 세금 없이 부(富)를 자식에게 넘겨주기 위해 비상장주식, 전환사채(CB) 등을 이용한 편법을 동원해 왔다. 최근 현대자동차 사건에서는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비자금조성과 배임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아직도 경영권과 소유권을 혼동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기업경영이 불투명하고 가진 자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미국과 다른 점도 상속세 완화에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우리정부가 기업의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이 된다면서 상속세 폐지를 추진하고 일반국민도 이에 호응하는 시대가 언제쯤 올까. 먼저 상속세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재벌을 포함한 가진 자의 몫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인은 법을 지키고 재산형성 과정이 투명하도록 기업경영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납부해야 한다. 또 가진 자들이 일자리 창출, 기부 등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최근 일부 재벌그룹이 ‘낼 세금을 다 내고 경영권을 승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동안의 탈법적인 경영권승계 관행을 깨뜨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결국 미국의 상속세 폐지 논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가진 자들이 법을 지키면서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을 다할 때 상속세 폐지 또는 완화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박상근·명지전문대 교수 세무사
조선일보, 독자칼럼, 입력: 2006. 05. 18. 22:46. 07